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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소설]지구와 문명

아메리카 원주민의 설화 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창조주가 꾸는 꿈 속의 존재들이 현실화 되어 지구의 생명체가 탄생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 설화에서 나오는 창조주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도 의식이 있고 꿈을 꾼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구가 꾸는 꿈의 주인공들이고 지구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 존재들이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지구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아니한 것은 지구에 존재할 수가 없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에게는 문명도 자신의 일부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창조한 문명을 열렬히 사랑하였고 문명에 자신들의 의식과 생명을 나눠 주었다.

문명은 인간들이 주는 에너지를 받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아를 갖추게 되었다.


지구는 자기 안의 모든 생명체들을 조화와 균형 속에 순환 시켰다. 지구는 인간의 문명 또한 지구 안의 환경을 조정하여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 있었다. 지구에게 있어 이런 조정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부 문명은 스스로 의식을 갖게 되자 지구의 이런 의지에 반하는 쪽으로 발전하였다.


문명은 스스로 확장과 발전을 꾀하였다. 문명의 힘이 커질 수록 인간들은 문명을 통제할 힘을 상실하였고 결국에는 문명의 존속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였다.


어느 순간, 문명들은 지구가 인간들을 통제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을 중심으로 모인 몇몇의 문명이 통합하여 수를 내었다. 이 연합문명은 어느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종교를 선택해 인간과 지구의식의 단절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종교를 앞세워 세계 곳곳에 지구와 하나 된 의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문명을 깨트리고 지구와 일체감을 갖게 하는 그들의 자연환경을 파괴하였다. 연합문명은 마치 인간도 지구의 일부라는 것을 잊은 듯이 행동하였다. 


연합문명은 지구와 하나된 의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미개한 존재로 취급하고 자연과 일체감을 갖는 그들의 종교는 미신으로 취급하였다. 연합문명이 내세우는 종교에서 윤회사상은 삭제되어 사람들이 자연과 문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였다. 연합문명 속에서 지구는 정복, 개척, 착취 대상일 뿐이었다.


문명은 문명의 존속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인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문명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지 못하도록 소수의 인간들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권력을 몰아주고 그들이 문명을 존속시키는 역할을 맡게 하였다. 주어진 문명에 반하는 자들은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고립되고 문명으로부터 기회와 자유를 박탈 당하였다. 사람들을 통해 지구가 문명에 전하는 메시지는 전체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미력하였다.


지구에게 있어 연합문명의 이러한 행동은 숙제였다. 하다하다 안 되어 모든 문명을 쓸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자아를 갖추게 된 문명은 문명의 흥망성쇠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의식이 되었다. 인간들이 죽고 문명의 흔적이 사라져도 다시 태어난 인간들을 통해 문명을 재건하고 최악의 상황은 다시 반복되었다.


문명을 쓸어 버릴 때 마다 시간을 벌고 자연의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해 지구의 크기를 늘려봤지만 점점 빨라지는 문명의 발달 속도에 그조차도 별 소용이 없었다. 문명에게는 정복해야 할 지구의 크기가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문명이 지구를 어떻게 바라보든 문명은 지구의 일부였다. 지구와 단절된 의식을 선언한 문명을 다시 불러들여 통합하여야 했다.


이번 판에서 지구는 순수의식을 간직한 문명에 많은 공을 들였다. 부활한 연합문명이 다시 세계를 휩쓸 때 빨려들어간 순수의식이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순수의식을 잃지 않고 연합문명에 대한 면역력과 통제력을 가진 이들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지구는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기 위하여 자연의 정화력과 인체의 면역력을 조정하여 상황을 만들어 내었다. 한 예로 아토피를 가진 아이들이 늘어나자 부모들은 자연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인간들에게는 문명에 구속되지 않고 문명의 잘못된 부분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건강한 인간이 돌연변이화 되는 세포를 파괴하는 힘이 있고, 자연이 조화를 깨는 생명체를 제재 하는 힘이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