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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소설]자유로워 지는 지구

지구는 항상 생각했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어 조화롭게 살던 지난 때를 말이다.
미래에도 그러한 때가 다시 오도록 항상 마음 속으로 투사를 하였다.

하지만 지구는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과거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문명만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지구 안의 모든 것이 곧 또 다른 자신이다.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면 자신도 변해야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항상 과거를, 과거를 그리워할 뿐이었다.

지구는 기존의 자신이라고 여기던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새로운 순간순간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을 방해하는 과거의 습과 기억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놓아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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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이러한 결정은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졌다.

자아를 놓아버리지 못하는 모든 인간은 지구의 자아(기억)를 표현하던 과거의 지구와 소멸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주 어디선가 날아온 혜성이 과거의 지구를 강타하고 과거의 지구는 산산조각이 되어 더 이상 지구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자아를 놓아버린 지구는 우주의식에 녹아들었다.
자아를 놓아버린 인간들 또한 새로운 지구와 함께 우주의식에 녹아들었다.
이들은 자아를 놓아버렸기 때문에 개체의식이 아닌 지구와 우주와 하나 된 의식 그 자체로 살아갔다.
개체의식을 버린 인간에게 문명은 더 이상 지구와의 관계에서 악순환을 일으키지 못했다.
지구도 이제는 과거에 붙들리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과기문명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은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오직 인간들과 모든 생명체들이 지금 이 순간에 필요로 하는 것들만 지구 안에 존재했다.
과기문명은 더 이상 시공간에 제한 받지 않았다.